백범 김구의 흔적(첫번째)

도봉산 등산로중 회룔사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약15분 정도 포장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가 보자.
석굴암이란 다소 특이한 형태의 절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 백범의 흔적이 있다.
다음편엔 백범기념관과 경교장의 백범의 흔적을 올릴에정임

by ondal11958 | 2009/10/28 10:15 | 역사 | 트랙백

사투리 지도

by ondal11958 | 2009/10/01 09:28 | 기본 | 트랙백

동굴벽 꾹꾹 눌러쓴 민족혼



중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태극기와 대한독립군의 명단(위). 아래 사진은 태극기 등이 그려져 있는 동굴 입구. 태극기와 명단은 비바람에 일부가 희미해진 상태여서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 사진(위)


은거지 동굴 입구에 ‘대한독립군’ 글자와 4명이름 적혀


일제강점기의 태극기와 독립군 이름이 적혀 있는 동굴이 중국 지린() 성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발견됐다.

2000년대 초 랴오닝() 성에서 독립군 장교가 은신하다 아사()했던 동굴이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독립군의 은신처로 사용된 동굴에서 태극기 벽화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는 3·1운동 90돌을 맞아 김춘선() 연변대 민족역사연구소장,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 장세윤 연구위원과 함께 간도() 지역 독립투사의 혼이 어린 3·13운동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 동굴을 직접 확인했다.

동굴이 발견된 지점은 옌볜 자치주 왕칭() 현 뤄쯔거우() 진 타이핑거우() 촌 인근의 산 중턱. 동굴은 높이 10m, 너비 4m, 길이 4m 크기로 앞자락이 급경사여서 은신이 용이하고 계곡으로 올라오는 적을 탐지하기가 쉬운 곳이다.

2007년 3월 동굴을 처음 확인한 김 소장의 안내에 따라 16일 동굴로 올라갔다.

동굴 오른쪽 입구 벽에 가로 40cm, 세로 30cm 크기의 태극기가 비교적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태극기에서 왼쪽 위로 30cm 떨어진 곳엔 (대한독립군)이라는 글자와 함께 (이준) (양희) (지승호) (장태호)라는 4명의 이름이 세로로 적혀 있었다.

동굴 벽화의 태극은 상하로 구분된 현재의 태극기와 달리 좌우로 구분돼 있고 4괘 중 건곤()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었다. 또 가로 세로의 비율도 현재와 같은 3 대 2가 아니라 4 대 3이었다. 먹물로 그린 듯한 태극기와 명단은 비바람 때문인 듯 4괘의 형태가 일부 흐려졌고 ‘대한독립군’ 글자 중 ‘독립군’은 희미해진 상태여서 정부의 보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와 전문가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송명호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은 “태극의 방향이나 괘의 위치로 보아 1923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에 내걸렸던 태극기와 비슷하다”며 “1920년대 간도 지역의 독립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극기 전문가인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동굴에 피신한 독립군이 당시 태극기 정본을 그대로 그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태극기 형태만으로 연대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당초 이 동굴은 1962년 북한 역사학자들이 김일성의 항일 유적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했으나 태극기가 그려져 있고 대한독립군이라는 글자가 나오자 사진 한 장만 간단히 찍은 뒤 조사보고서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소장은 “이 사진을 뒤늦게 옌볜박물관에서 발견하고 동굴의 소재 추적에 나서 2년 만에 소재를 확인했다”면서 “동굴에 적힌 4명의 이름은 지금까지 드러난 독립군 명단에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칭(옌볜)=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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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l11958 | 2009/02/24 09:51 | 역사 | 트랙백

고집 없고 잘 웃고 베풀고 … 이런 사람이 오~~래 산다

무병장수의 비밀을 성격에서 찾아라. 감기 기운만 있어도 만사가 귀찮고 짜증나고 걱정거리가 있을 땐 잘 체하고 소화가 안 된다. 마음을 관장하는 신경계가 장기의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도 병행하기 때문이다. 건강 100세를 위해선 체력 향상뿐 아니라 건강에 좋은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질 높은 삶을 위해 필요한 건강한 성격의 핵심과 실천법을 알아본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융통성=노화와 더불어 심신은 경직되기 마련. 팔다리의 유연성이 떨어지듯, 전두엽의 기능이 퇴화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생각이 완고해지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남의 의견을 경청하던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도 노년기엔 새로운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불통이 되기 쉽다. 진보적이던 청년이 중년기를 지나면서 보수화되는 이유다.

익숙한 옛것을 고집하는 이유는 새로운 일에 직면할 때 위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사를 “세상이 변해 청년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는 식의 한탄만 하다간 전두엽 기능이 점점 퇴화하면서 주변으로부터 점점 더 고립된다. 사회적 위축과 고립감이 지속되면 우울증이 찾아오고, 면역기능이 떨어져 각종 질병에 취약해진다.

따라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다양한 관점이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 ‘9988(99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삶)’의 산증인인 장수인들은 젊은 사람과 늘 교류하며 젊은 세대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긍정적으로 운명에 순응해야=운명에 긍정적으로 순응하는 태도도 길러야 한다. 예컨대 목표한 일에 절반의 성공을 거뒀을 때 ‘절반밖에 못했다’ 가 아니라 ‘절반을 달성했다’는 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실제 100세인들은 가족·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러이러 했으면 좀 더 오래 살았을 텐데…’라며 애통해 하기보단 현실을 인정하고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에서 영생할 것’이라며 슬픔을 긍정적으로 소화한다.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와 도덕심도 건강을 해친다. 완벽해야만 만족하는 사람은 매사에 본인과 주변 환경, 사회에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누적된 불만은 스트레스를 증폭시켜 특히 소화기와 심혈관계 질병 발생을 높일 뿐이다.

◆희로애락은 표현한 뒤 잊어야=인생의 여정에선 수시로 화나는 일이 발생하게 마련. 이때 불쾌한 기분은 그때그때 적절한 수준으로 푼 뒤 쉽게 잊는 게 좋다.

만일 화를 억누르면 화병에 걸려 자다가도 열이 치밀고, 가슴이 두근거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또 화를 못내는 사람으로 지목되면 주변에서 부당한 일을 미루는 일도 잦아져 분노심이 축적되고 화병이 깊어지게 된다.

물론 분노심은 폭발해도 해롭다. 자율신경계가 자극돼 극도의 긴장상태를 초래하면서 맥박·호흡·혈압을 올리고 소화불량·속쓰림·두통 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다혈질인 사람이 협심증·심근경색증·위십이지장 궤양·소화불량증 등에 2∼3배 많이 걸리는 이유다. 또 이런 사람은 가족·이웃·동료 등을 멀리 해 고독감과 우울증이 찾아오기 쉽다.

따라서 희로애락은 매 순간 주변과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누고 베풀면서 사교생활을=‘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일상사를 함께 할 6명 이상의 친구를 가져라’. 이는 영국의 사회사업가 힐러리 코탐이 영국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다.

실제 장수인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주변 사람의 희로애락을 공감하며 나누는 기쁨을 함께하는 성품 덕분이다. 실제 국내 100세인들의 방 한켠에는 사탕과 과자가 늘 쌓여 있다. 찾아 오는 손님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베푸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건강의 보약인 엔돌핀이 증가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 주신분=건국대병원 정신과 하지현 교수,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박상철 교수

Tip 무병장수를 위한 10가지 마음가짐

① 융통성이 많고 다양한 생각을 인정한다

② 낯선 환경에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적응하려고 노력한다(운명에 순응)

③ 화나는 일은 매순간 적절한 방법으로 푼다

④‘꽁’한 면이 없다

⑤ 분하고 불쾌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는다

⑥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⑦ 잘못된 일이 생기면 내 탓과 남의 탓을 반분한다

⑧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다

⑨ 남과 함께 어울리고 베풀면서 기뻐한다

⑩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by ondal11958 | 2009/02/10 08:28 | 몸 튼튼,마음 쉄쉄 | 트랙백

200년 만에 열린 블랙박스 … 다시 써야 할 정조 시대 역사

군왕의 ‘비밀 편지’는 아침 녘에만 세 차례나 전해졌다. 하루에 네 번 보낸 일도 있었다. 서찰은 은밀하게 오갔다. 관복을 입지 않은 승정원 심부름꾼은 자유롭게 궁을 출입했다. 수신자의 관직이 높아지자 남의 눈을 의식해 양반집 노복(奴僕)이 밀서(密書)를 품고 궁을 오갔다. 이렇게 전달된 임금의 편지는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4년간 299통. 임금은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열사흘 뒤 숨을 거뒀다.

조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이면사가 세상에 드러났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가 고위 관료 심환지(沈煥之, 1730~1802)에게 보낸 서간 299건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9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새롭게 발굴한 ‘정조 어찰첩(御札帖)’의 실물 일부를 공개하고 학술대회를 열었다.

◆역사가 비켜간 ‘블랙박스’=이번에 공개된 정조 어찰은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보낸 것이라 이례적이다. 또 날짜별로 일괄 정리돼 공식 사료와 대조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다량의 서신을 정기적으로 받은 인물이 심환지라는 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정조에게 가장 적대적인 당파로 알려진 노론 벽파(僻派)의 영수였다. 이는 왕조의 공식 사료인 『정조실록』 『승정원 일기』와 정조의 개인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다. 서신에서 정조는 편지를 태우거나 찢어버리라고 계속 말하지만 심환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서간을 통째로 보관해 뒀다. 심환지가 왕명을 거역하면서까지 간직한 이 방대한 자료는 200년 뒤 정조와 그의 시대를 들여다볼 역사의 ‘블랙박스’가 됐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조의 집요한 ‘서신 정치’=정조는 ‘서신 정치’를 중요한 통치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개혁파 영수였던 남인의 채제공(1720~1799)에게도 개인 서신을 다수 보냈다. 이런 비밀 편지를 통해 공식 사료에선 알 수 없었던 정치 이면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

먼저 노론 벽파와 심환지에 대한 재평가다. 지금까지 노론 벽파는 정조의 최대 적대 세력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정조가 수년에 걸쳐 은밀하게 심환지를 통해 ‘대리인 정치’를 했을 가능성이 이번 서신에서 제기된다. 벽파는 정조가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국정 파트너’였고, 심환지는 정조의 ‘복심’을 펼치는 최측근 신료였을 거란 해석이다. 예컨대 1798년 7월 14일, 정조는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하고 8월 28일에는 우의정에 임명했다. 우의정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심환지는 궁을 떠나 금강산으로 유람을 가며 예조판서를 그만두는 사직소를 세 차례나 올린다. 공식 사료에는 이런 인사 발령 사항만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번 서찰에서 드러난 사실은 사직소를 올리는 횟수와 시기까지 정조가 지시했다는 것이다. 금강산 유람도 정조의 권유였다. 심환지를 우의정으로 삼아 국정운영을 하고자 하는 국왕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일종의 정치적 속임수를 쓴 것이다. 공식 사료에는 심환지가 올린 것으로 돼 있는 상소문이 정조가 사전에 편지로 알려 준 문구 그대로 돼 있는 경우도 있다. 국왕이 의지를 직접 펴기 곤란할 때 측근의 신하를 통해 뜻을 펼친 것이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에 대해 “이 서신만을 놓고 정조를 ‘벽파의 후견인’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곤란하다”며 “정조는 다른 당파에도 비슷한 ‘서신 정치’를 했을 것이며 이것들이 발굴돼야 종합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조 독살설의 진실은?=정조는 1800년 6월 초 등창 때문에 앓기 시작해 20여 일 만에 급서했다. ‘독살설’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현대 사극이나 작가들의 단순한 추리만은 아니다. 정조 사후에 남인 측이 제기하던 의혹이기도 했다. 특히 보수 강경파의 영수였던 심환지에게는 독살설의 주범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하지만 이번 서찰에 나온 내용을 더듬어볼 때 ‘독살설’은 단순한 ‘음모론’일 가능성이 커졌다. 정조는 수년에 걸쳐 심환지에게 자신의 병세를 알렸다.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져 그동안 차가운 약제를 몇 첩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중략)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모두 고생스럽다”(1800년 6월 15일)고 호소한다. 국왕의 병세는 국가의 일급기밀에 해당한다. 심환지에 대한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찰을 분석한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이번 서찰이 ‘독살설이 잘못됐다’고 결정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심환지가 음모에 관여됐다는 의혹은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조 시대 재해석 필요=이번 서신 공개로 인해 그간 공식적 사료에 의한 정조 시대 해석에 상당 부분 수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조가 화성 건설에 몰두하던 1795년 이후 심환지의 벽파 세력이 왜 약진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된다. 단국대 김 교수는 “이번 자료를 통해 ‘정조의 이면’이나 당시 정치의 ‘뒷모습’을 읽고 충격받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이 발굴을 ‘엄청난 선물이자 동시에 커다란 과제’라는 말로 표현한다. 300편에 이르는 정조 자신의 목소리를 공식 사료와 하나씩 대조해 가며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정조 어찰 299편을 영인·탈초·번역하고 그 연구 결과를 담은 책을 다음 달 중 발간할 계획이다. 이번 작업에는 한국고전번역원도 함께했다.

정조 어찰첩은 원래 심환지 가문에서 보관돼 왔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의 소장자는 심씨 가문과 무관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 공개를 꺼리는 이 소장자는 조만간 정조 어찰첩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기탁할 것이라고 전했다.
어찰 299통 중 3건을 제외하곤 모두 정조의 친필이다. 심환지와 하루가 멀다 하고 주고받은 데다 다른 각료들과도 이런 서신을 주고받았을 것임을 고려하면 정조는 엄청난 양의 편지를 써낸 것이다.

정조가 시간에 쫓기며 쓴 비밀 어찰은 정제된 한문 문장과는 거리가 있다. 옆에 사람을 두고 말하는 듯 우리말을 그대로 한문으로 옮긴 듯한 대화체 문체가 특징이다. “혹시 생각해 둔 좋은 건더기(好滓料·좋은 찌꺼기 재료)가 있는가?”라거나 “나의 지시로 좌의정이 욕을 한 사발(一鉢辱說)이나 먹게 만들었으니”와 같이 왕이 쓸 법하지 않은 속어가 곧잘 나온다. 그 밖에도 ‘볼기를 까고 주먹으로 맞는 격(露尻受拳)’ ‘한 귀로 흘리다(一耳流)’ ‘꽁무니 빼다(拔尻)’ ‘누울 자리 보다(占臥)’ ‘마누라 장의(抹樓下長衣)’ ‘입에 맞는 떡(適口之餠)’ 등의 속담을 활용해 정조 식의 유머와 해학을 드러낸다.

‘지즐우(仍于·때문에)’라는 이두나 ‘모쪼록(모조·某條)’ ‘좌우간(左右看)’ 같이 우리말을 직역한 듯한 한글식 표현도 흔하다. 심지어 ‘뒤쥭박쥭(뒤죽박죽)’ ‘만조(얼굴이나 모습이 초라하고 잔망한)’ 같은 한글 어휘가 그대로 편지에 노출된 경우도 있다. ‘껄껄(呵呵)’ ‘쯧쯧’ 같은 의성어를 사용해 상대방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용어와 진배없는 표현을 어찰에 쓴 셈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를 “짧지만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문장”이라며 “상황에 들어맞는 속담·고사와 속투의 어휘를 활용해 상대편의 심리를 장악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by ondal11958 | 2009/02/10 08:24 | 역사 | 트랙백

서울의 ‘외국인 지도’



서울 ‘미니 지구촌’ 20곳… 영등포- 강남- 용산 밀집

구로 옌볜거리… 중구 몽골타운… 이태원 이슬람인마을…

‘모자이크 사회’ 초기단계… 2015년엔 외국 100만 될듯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한 미군들을 위한 유흥가, 쇼핑 명소로 이름을 날렸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가 2000년대 들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터줏대감’이던 미군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상당 부분을 이슬람인들이 채웠다. 한남동의 이슬람 중앙성원 주변엔 수십 곳의 이슬람 상점이 들어서 있고, 합동 예배가 있는 금요일 오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슬람인들로 북적인다.

또 이슬람인 마을 양쪽에는 나이지리아 거리와 흑인 마을이 들어서는 등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태원은 클럽이 사원으로 바뀌고, 술집이 이슬람 전문 음식점으로 바뀌는 등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서울의 ‘다문화 지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서울에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외국인의 집단 거주지와 생활양식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 20여 개 외국인 커뮤니티 형성

현재 서울에 사는 외국인은 25만여 명. 이들은 출신 국가별로 특정 지역에 모여 살기도 하고, 상업지역이나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모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외국인 커뮤니티는 20여 개.

외국인 마을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구로구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펼쳐진 한국계 중국인 마을. 특히 가리봉시장 인근 약 500m에 이르는 골목은 ‘옌볜 거리’로 불릴 정도다.

이들의 거주 지역은 대림동, 구로동, 영등포구 일대까지 넓게 퍼져 있다. 영등포구와 구로구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이주민들은 2008년 현재 5만9485명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전체 외국인(25만5207명)의 23%를 차지한다.

종로구 혜화동의 필리핀 거리는 종교 때문에 형성된 거리다. 혜화동 천주교 성당의 일요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 인근에 사는 필리핀 이주자들이 모여든다. 일요일 오후 성당 인근 도로변에는 필리핀 벼룩시장이 형성돼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중구 광희동에는 러시아·중앙아시아 거리와 몽골타운이 있다. 1990년 러시아와 수교한 이후 동대문시장을 찾는 러시아 상인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희동에 자리 잡으면서 소규모 무역업을 하는 업체와 옷가게, 식당 등이 들어선 것이다.

인근의 10층짜리 건물엔 몽골인들을 위한 식당과 식료품점, 각종 편의시설 등 몽골타운이 조성돼 있기도 하다.

프랑스 학교가 옮겨간 서초구의 방배동과 반포4동 일대는 서래마을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집단 주거지가 형성됐고, 용산구 이촌동에는 일본인이 많이 산다.

출신 국가별로 거주지는 큰 차이가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출신은 영등포구나 구로구 등의 저렴한 주거지를 중심으로 모여 산다. 반면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출신은 쾌적한 주거지에 모여 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은 인종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의한 격리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글로벌 서울, 모자이크로 변화해야

서울의 ‘글로벌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1998년 5만990명에 불과하던 서울 거주 외국인은 2008년 25만5207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의 총인구 대비 외국인의 비율도 1998년 0.49%였지만 2008년에는 2.44%로 5배로 늘었다.

특히 외국인의 증가가 서울의 총인구 증가를 주도하고 있을 만큼 서울 거주 외국인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8년 서울시의 인구는 전체적으로 3만4252명이 증가했는데, 이 중 외국인이 2만6135명으로 76%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라면 서울의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이 넘어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시기도 그리 머지않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이르면 2015년에는 외국인 인구가 전체의 10%인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홍석기 연구원은 “우리 사회가 외국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데다 경제가 발전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국가별로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것은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외국인들이 거주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 전단계에 나타나는 초기 현상이라는 것. 일부에서는 슬럼화 등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 배려를 중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연구원은 “서울의 글로벌 빌리지센터 등을 활용해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외국인의 경제 수준에 맞는 저렴한 임대주택과 교육시설을 고루 분산시키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서울의 외국인 분포가 모자이크처럼 발전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y ondal11958 | 2009/02/05 11:29 | 기본 | 트랙백

그리멀지 않는 지난 사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일본의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15일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는다.

1945년 11월, 강원도 삼척으로 가는 도중에 짚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 미군

1945년 11월 강원도 삼척에서 평창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는 두 노인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도중, 잠시 멈추어 있는 경부선 열차. 화물차로 보이는 열차에는
승객들로 빼곡히 차 있다. 담소를 나누고 있는 역무원들의 모습

1845 강원도 평창 서쪽, 한 노인이 곰방대를 문채 응시하고 있다.


1945. 11월 부산에서
1945년 11월 부산
미 연합군을 따라 남하하는 남루한 모습의 노인.


1945년 부산발 서울행 열차에서.


1945년 10월 서울 한강철교


October 1945, five miles south of the main road between Inchon and Seoul.


Han River near Seoul in November 1945.


Somewhere east of Seoul we saw these rice fields in December 1945.


Seoul, Korea January 1946.


We were highly impressed with the beauty of the Korean railway stations. We saw this one somewhere southeastof Seoul in December, 1945


October 1945 in Seoul, Korea


November or December 1945 in downtown Seoul. I don't recall the reason for the parade. Perhaps Lostseouls will translate the symbols.


Maybe one of my Korean cyber-friends could translate. All the data I have is that it was near where we lived. As I recall after 61 years, our quarters were in the large building in the bckground.


Ceremony welcoming Syngman Rhee on his return to Korea in October 1945.


At the welcome for Syngman Rhee in October 1945. 소녀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하지중장


Red light district in Seoul, Korea was off limits to GI's in the fall of 1945


Seoul, Korea in December 1945. As I recall, this shows the only source of heat for many of the small shops.


Seoul, Korea October 1945


1945년 가을, 서울의 남산에서 만난 한 소녀 (소녀가 업고있는 아기는 그의 여동생으로 보인다) 뒤에 보이는 것은 당시 남산에 있던 일본 신사의 모습


1945년 서울거리 곳곳에 미 연합군의 서울 입성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1945년 11월 서울의 Honto Hotel (지금의 조선호텔로 추측)옥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시내. 멀리 명동성당이 보인다.






[출처] 그리멀지 않는 지난 사진

by ondal11958 | 2009/02/04 10:09 | 역사 | 트랙백

인생을 축제로 이끄는 마음의 로드맵

인생을 축제로 이끄는 마음의 로드맵


풍요로운 삶을 위한 잭 캔필드의 인생 레슨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시리즈에서 감동적인 영혼의 전달자로 유명한 잭 캔필드의 최신작이다. 잭 캔필드는 이 책에서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대로 실천에 옮긴다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마음의 인력법칙(the Law of Attraction)을 강조하고 있다. 이 법칙은 전문 강사와 이를 응용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수천 개의 단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인생을 축제로 만들기 위한 7단계의 로드맵마다 5가지의 인생레슨이 소개되고 있다. 각각의 인생레슨은 생활 속의 감동 실화와 전문가들의 해법이 담긴 인생레슨, 즉각 실천이 가능한 실전연습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잭 캔필드는 성공과 부를 위한 35가지의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인생을 축제로 만드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언제나 생각한 대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지구상에는 만유인력이 있듯, 사람 사이에도 인력(引力)이 상호 작용한다. 이것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작용하며, 사람들이 인식하건 못하건 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기장을 펼치고 있는 자석과도 같다. 이러한 마음의 인력법칙(the Law of Attraction)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 법칙을 잘 활용했다.
“부와 성공, 건강과 행복 등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자 한다면 마음의 인력 법칙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잭 캔필드는 말하고 있다. 그 방법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으며, 마음가짐 자체의 힘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미국에서 유명한 카운슬러 4인(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아나 가벨리니, 에바 그레고리)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져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한계에 다다른 순간일지라도 아무렇게나 되는 인생은 없다.”
불경기에, 쪼그라드는 살림에, 일자리 문제 등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때다. 빚에 쪼들리고 밀려드는 청구서 뭉치들, 한계에 부닥쳐 옴짝달싹 못하는 지옥같은 막다른 순간의 연속이라는 비참한 상태에 처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나의 최종적인 모습이란 말인가!”
이 책에 실린 35개의 실화에는 고통과 절망의 순간,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대한 생생한 체험기가 실려 있다. 잭 캔필드는“누구나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그 같은 일이 내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생각이 미치면 기(氣)도 흐르는 법이라서, 흐르는 대로 가도록 놔두고 성공을 위해 스스로에게 힘을 실어주라는 인생레슨을 독자에게 권하고 있다.

☞“아기 발걸음이 눈사태를 불러온다.”
부자나 스타를 보면 넉넉한 재산, 건강미, 이상적인 배우자, 행복한 자녀들, 그리고 항상 멋진 시간과 장소에서만 그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러분은 그것을 행운이나 혹 집안 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을 원하는 위치에 오르게 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다. 누구나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신감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를 의심해 본 적은 없는가? 가슴에 품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인생을 건다면 한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그것은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높은 수준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꿈과 목표를 성취한 사람처럼, 인생을 축제로 이끌기 위해서는 마음의 인력법칙을 잘 활용해야 한다.

☞ 차례
마음의 로드맵 #1 활용 요령
마음의 로드맵 #2 한계에 다다른 순간
마음의 로드맵 #3 생각 바꾸기
마음의 로드맵 #4 직관을 믿고 행동하기
마음의 로드맵 #5 아기 발걸음이 눈사태를 불러 온다
마음의 로드맵 #6 충만한 잠재력
마음의 로드맵 #7 믿음의 행동

☞ 책 속의 이 한 마디
삶이란 만찬이 차려졌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삶이 이 지경까지 이르도록 놔두었을까 의심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 스스로 버스에 탄 승객처럼 수동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라.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책임을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모든 경험을 배움의 도구로 이용한다면 자신의 삶을 제어할 능력이 충분하다. 이럴 때 단 한 걸음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 저자 소개
잭 캔필드
잭 캔필드는 미국의 전문 연설가이자 저술가이며 카운슬러이다. 그의《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시리즈는 47개 언어로 1억 부 이상 판매되었다.‘굿모닝 아메리카’‘20/20’‘NBC 나이트 뉴스’등의 텔레비전 프로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매년 100여 개가 넘는 기업과 단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글과 강연으로,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혼의 전달자로 유명하다. 사랑, 가능성, 따뜻한 마음, 영혼의 기쁨, 꿈, 감사하는 마음 등 삶의 중요한 요소를 이야기로 담아내고 그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팀을 이끌고 있다.

마크 빅터 한센(Mark Victor Hansen)
마크 빅터 한센은 인간의 잠재력에 관한 연구를 30년 이상 해온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는 개인의 비전을 새롭게 해주고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의‘가능성’과‘기회’, ‘행동’에 대한 메시지는 전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과 수천 개의 단체에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잭 캔필드와 함께 엮은《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시리즈의 공동저자이면서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연설가이며 마케팅 전문가이다.

지아나 가벨리니(Jeanna Gabellini)
‘실천의 기술’‘우주로 빠르게 다이얼을’‘마인드 게임’‘성공게임을 위한 홈스터디 코스’‘자석처럼 돈을 끌어당기기’‘재정적인 부자’등의 책과 프로그램의 작가이며 연설가, 프로그램 지도자이다. 그녀는 마음의 인력법칙(the law of attraction)을 통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라디오와 전화상담을 통해 1만여 명에게 강의했다. 특히 미디어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면서 ‘동기부여’ 전문가로 인정받아 왔다. 공동 진행자로‘지아나와 에바 쇼’의 공동 사회자다.

에바 그레고리(Eva Gregory)
‘지아나와 에바쇼’의 공동 사회자이며《성공을 위한 굿 가이드》의 저자이다. 마음의 인력법칙을 통해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법을 가르쳐왔다. 20년 동안 포춘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의 재무와 조직, 마케팅을 연구했다.



제 목 : 인생을 축제로 이끄는 마음의 로드맵
분 야 : 자기계발
저 자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외
정 가 : 12,800원·324쪽

by ondal11958 | 2009/02/04 10:06 | 보기 | 트랙백

치즈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 가공치즈 加工- (processed cheese)
우유를 응고 발효시켜 만든 치즈나 자연 치즈 두 가지 이상을 혼합하고 유화제(乳化劑)와 함께 가열·용해하여 균질하게 가공한 치즈.
1911년 스위스에서 최초로 시판되었으나, 유럽에서는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1916년 미국 J.L.크래프트가 제조한 이래 수요가 늘기 시작하여 오늘날 치즈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주원료로는 체더치즈를 많이 사용하지만, 고우다·스위스·림버거·브릭·카망베르치즈도 사용된다. 그 외에 과실·채소·고기·향료 등을 넣기도 한다. 탈지분유를 넣은 치즈 식품이나 수분이 많고 잘 퍼지는 치즈 스프레이드 등도 가공 치즈라 할 수 있다. 초기에는 불량 치즈의 재생법으로 이용되었으나, 가열처리되어 보존성이 좋고 경제적이므로 현재 많이 소비된다.


♣ 고다치즈 (Gouda cheese)
우유로 만든 경질(硬質) 치즈.
수분함량이 적은 천연치즈로, 원산지인 네덜란드 남부 조이트홀란트주(州) 고다(Gouda)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살균한 원료우유에 치즈 스타터(cheese starter:탈지유에 젖산균을 배양한 것)를 넣어 발효시켜 굳힌 뒤 커드(curd) 입자만을 모아 일정한 형틀에 넣고 압착한다. 이렇게 하면 지름 30~35cm, 높이 10~13cm, 무게 약 8kg의 원판 모양 치즈가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만든 생치즈에 파라핀을 입혀 13~15℃에서 약 4개월간 숙성시킨다.
파라핀을 입히는 이유는 잡균의 번식이나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서이며, 숙성 과정에서 젖산균 등 미생물의 단백질 분해효소나 지방 분해효소에 의해 아미노산 같은 수용성 질소화합물과 유리지방산 등이 생겨 치즈 특유의 풍미를 지니게 된다.
담황색 또는 버터 빛깔을 띠며,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미국·영국·독일·덴마크·일본 등지에서도 많이 생산한다.


♣ 로크포르치즈 (Roquefort cheese)
프랑스 남부의 로크포르 마을에서 만드는 반경질의 양젖 치즈.
특수한 푸른곰팡이로 숙성시켜 푸른 줄무늬가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00년 이상의 역사가 있으며, 오래 전부터 상표권이 고수되어 온 것으로, 일반적으로 같은 종류의 프랑스 제품을 블뢰 프로마주(bleu fromage)라 하고, 다른 나라의 제품은 블루 치즈라고 한다. 영국의 스틸턴(Stilton)이나 이탈리아의 고르곤촐라(Gorgonzola)도 같은 종류의 유명한 제품이다.


♣ 블루치즈 (blue cheese)
곰팡이로 숙성시킨 것이며 숙성에는 푸른곰팡이의 일종인 페니실륨 로케포르피(Penicillium roqueforfi)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치즈에는 프랑스의 로크포르 치즈(Roquefort cheese)가 있는데, 이것은 로크포르 지방의 양젖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우유로 만든 경우 푸른곰팡이의 대리석 무늬가 나타나 블루치즈라고 부르게 되었다.


♣ 산유치즈 酸乳- (sour milk cheese)
젖산[乳酸]으로 우유를 응고해서 만드는 치즈.
코티지치즈(cottage cheese:젖산발효가 주체를 이룬다) 등이 이에 속한다. 원래 치즈는 우유가 자연적으로 젖산발효되어 카세인이 산응고(酸凝固)된 것인데, 현재는 대부분의 치즈제조에 레닛을 사용한다. 레닛은 일종의 응유효소(凝乳酵素)인데, 이렇게 해서 만든 치즈를 레닛치즈라고 한다.


♣ 삼소치즈 (samsoe cheese)
에멘타르형으로 생긴 덴마크산 치즈.
표면이 노랗기 때문에 금빛 치즈라고도 한다. 지름 44cm, 높이 10cm의 원반 모양의 치즈이다. 단면은 담황색의 왁스 모양이고 발효중에 발생하는 가스 때문에 생긴 6∼12mm의 공동(空洞)이 있다. 약간 단맛이 도는 호두맛과 같은 풍미가 특징이다. 덴마크에서 많은 양이 생산되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 에멘탈러치즈 (Emmentaler cheese)
스위스 에멘탈 지방이 원산지인 치즈.
스위스의 대표적 치즈로 외국사람들은 흔히 스위스치즈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미국산 에멘탈러치즈를 스위스라 부르고 스위스산을 스위철란드 스위스(Swizerland Swiss)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지름 1m, 무게 100kg의 원반형의 경질치즈로 호두맛이 난다. 숙성기간은 10∼12개월이며, 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의 폰티나, 프랑스의 그뤼예르 등이 비슷한 맛을 가진 치즈 종류이다.


♣ 연질치즈 軟質- (soft cheese)
치즈를 굳기에 따라 분류할 때 연한 편에 속하는 치즈의 총칭.
연질치즈에는 숙성시킨 것과 숙성시키지 않은 것이 있는데, 숙성시킨 것에는 카멤버트 치즈 ·브릭 치즈와 같이 곰팡이를 이용한 것과, 림버거 치즈 ·벨페 치즈와 같이 세균을 이용한 것이 있다. 숙성기간은 짧아서 몇 주일이면 된다. 숙성시키지 않은 것에는 코티지 치즈 ·크림 치즈 ·뉴샤텔 치즈가 있다. 일반적으로 수분함량이 높아 40~60 %나 되고, 보존성이 좋지 않으므로 제조 후 빠른 기일 내에 식용하며, 또 저온에서 보존해야 한다.


♣ 체더치즈 (Cheddar cheese)
우유로 만든 경질(硬質) 치즈
수분함량이 적은 천연치즈로, 원산지인 영국 서머싯주(州) 남서부 체더(Cheddar)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원료우유를 치즈 배트(cheese vat)에 넣고 30℃에서 약 1시간 발효시켜 굳힌 뒤 커드(curd) 입자만을 모아 일정한 형틀에 넣고 압착한다. 이렇게 하면 지름 30~37cm, 높이 30cm, 무게 약 35kg의 원통형 또는 직육면체 치즈가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만든 생치즈에 파라핀을 입혀 4~15℃에서 5~6개월간 숙성시킨다.
숙성 과정에서 젖산균 등 미생물의 단백질 분해효소나 지방 분해효소에 의해 아미노산 같은 수용성 질소화합물과 유리지방산 등이 생겨 치즈 특유의 풍미를 지니게 된다. 10℃ 이하의 저온에서 숙성시키면 시간은 오래 걸리나 품질이 더 좋은 치즈를 얻을 수 있다.
크림색에 온화한 산미(酸味)가 있으며 독특한 단맛과 향(香)을 낸다. 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에서도 제조하며, 특히 미국에서 대량생산하는 아메리칸 체더치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 카망베르치즈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즈의 하나.
나폴레옹 1세가 프랑스 국내를 진군(進軍)하던 중 카망베르라는 지방에서 치즈를 발견하고 맛을 칭송하면서 이와 같이 지었다고 하며, 이것을 처음 만든 농촌 주부의 조각상(彫刻像)도 남겨서 솜씨를 후세 사람들에게 기억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치즈는 흰 곰팡이를 사용해서 만드므로 '흰 곰팡이 치즈'라고도 한다.
편평한 원판모양으로, 지름 약 11cm, 높이 약 3.5cm, 무게는 300g 정도인데, 표면에 흰 곰팡이가 펠트(felt) 모양으로 자라 있고 내부는 크림상으로 되어 있다. 단백질의 분해속도가 빠르고 분해도가 높아 자극적인 냄새가 나지만 매우 맛좋은 치즈이다.


♣ 브레스 블루치즈 (blue cheese)
반경질(半硬質) 치즈.
곰팡이로 숙성시킨 것이며 숙성에는 푸른곰팡이의 일종인 페니실륨 로케포르피(Penicillium roqueforfi)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치즈에는 프랑스의 로크포르 치즈(Roquefort cheese)가 있는데, 이것은 로크포르 지방의 양젖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우유로 만든 경우 푸른곰팡이의 대리석 무늬가 나타나 블루치즈라고 부르게 되었다.


♣ 크라우터치즈
풀잎을 넣은 치즈란 뜻으로 독일에서 생산되는 치즈.
15세기 중엽부터의 전통을 지닌 스위스의 샤브치거와 같은 종류이며, 별명을 초록치즈라고 한다. 이 치즈는 달콤한 방향이 있는 클로버 잎의 분말을 넣어서 담록색이고 예리한 자극성과 상쾌한 향기를 지닌다. 오랫동안 압착하면서 발효시키기 때문에 단단하여 강판에 갈아서 쓰는 데에 적합하다.


♣ 크림치즈 (cream cheese)
크림과 우유를 섞어 만든 치즈.
국적 : 서양
구분 : 치즈
주재료 : 우유
숙성이 되어 있지 않아 맛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특히 미국에서 인기있는 치즈이며, 일반 치즈와 달리 짠맛 대신 약간 신맛이 나고 끝맛이 고소하다. 수분 함량이 높고 지방이 45% 이상 들어 있는데, 지방 함량이 65%를 넘으면 더블크림치즈라고 한다. 발효에는 보통 스타터와 레닛을 함께 사용하지만 더블크림치즈는 스타터만으로 발효시킨다. 쉽게 상하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하고, 카나페·샌드위치·샐러드드레싱·디저트요리·쿠키·치즈케이크 등의 재료로 사용한다.


♣ 에담[네덜란드]
네덜란드의 가장 유명한 치즈하면 생각나는 것이 에담과 고다인데 이미 우리 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수입이 되고 있다.
특히 에담은 빨간색의 피막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치즈로 간혹 이부분을 먹어야되는지 말아야되는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었다. 이부분은 wax 부분이므로 먹는 것은 아니다.
에담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의 북쪽에 있는 에담항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 라클레떼[스위스]
국내에도 이미 수입되고 있으며 매니아층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라클레떼는 스위스의 전통치즈이다.
스위스가 원산지이며, 하드치즈류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8~11kg 정도로 만들어지고 원통형의 모양으로 제작 되어진다.
연한 노란색부터 조금 진한 갈색까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한 rind(껍질)를 가지고 있다.
테이블 치즈나 grilling하는 요리들에 적합하다. 특히 녹는성질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치즈이다.
라클레떼는 녹는 성질이 매우 훌륭하여 전통적인 이용방법으로 절반을 자른 후 자른 면을 불에 녹여서 긁어 내면 약간의 신맛과 풍부한 맛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녹이게 되면 더욱 풍부한 맛을 가지게 된다.
3~4개월의 숙성기간을 가지며 지방의 함량은 45퍼센트 정도이다.


♣ Brie[프랑스]
치즈의 여왕 브리...
브리는 까멩베르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프트치즈이다.
브리는 프랑스의 Ile-de-France란 지역에서 유래하였으며 파리와 매우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다. 까멩베르와 같이 매우 부드럽고 좋은 감촉을 지닌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상온에서 흘러내리지는 않는다. 흰색의 곰팡이가 표면을 덮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맛은 약간의 적포도주를 크림 버섯스프에 넣은 맛과 같다고 하며, 향은 아주 약간의 암모니아 향과 함께 버섯스프의 냄새가 난다
최소 4주의 숙성기간을 가지며 보통 4~8주 정도 숙성시킨다. 2.5킬로그람 정도의 무게로 제조되어 진다. 너무 오랜기간의 냉장 보관은 맛과 향에 좋지 않다.
와인과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에 와인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치즈이기도 하다.


♣ Saint-Albray[프랑스]
생딸브라이는 프랑스가 원산지인 소프트치즈이다.
크기는 대략 2kg정도로 만들어지며, 약간 붉은 색을 띈 갈색의 외피를 가지고 있다.
모양은 원반형으로 외피에는 흰색 곰팡이로 덮여져 있으며, 내부에 치즈아이를 가지고 있다.
생딸브라이는 까멩베르의 향이 너무 강한 사람들을 위해서 1976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되어서, 비교적 최근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치즈이다.숙성기간은 약 2주 정도로 짧은 편이며, 수분의 함유량이 다소 있는 편이다.
상당히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미한 지방의 고소함도 좋다. 조직도 다소 탄력적이어서 질감도 뛰어나다. 마치 쫀득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테이블치즈로서 활용하기 적합하고, 까멩베르나 브리와 같은 톡쏘는 맛과 버섯향이 다소 강한 사람들에게는 안성 맞춤이다


♣ 프로마지 드 스와뇽 블랑(염소젖으로 만든 치즈)
염소젖으로 만들어진 치즈류에서는 소젖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독특한 맛과 질감, 향이 있습니다.
약간의 목초 냄새와 독특한 산미, 아주 감미로운 질감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치즈입니다.
숙성기간이 없는 치즈인듯, 치즈 고유의 꼬리한 맛과 향은 전혀 없으며 숙성된 맛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유산균 발효만으로 만들어진 치즈인듯 하며 약간의 쓴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시 치즈인 마스카폰과 비슷할 정도로 부드러운 느낌이지만 굳기가 더 굳고, 마스카폰과는 다른 깊은 맛이 있습니다. 참고로, 마스카폰은 비숙성치즈이며, 프레시 치즈입니다.


♣ 고르곤졸라[이태리]
이태리의 대표적인 소프트 치즈이며 전형적인 곰팡이로 만든 치즈 고르 곤졸라는 유산균(lactic acid bacteria)에 의해서 만들어진 치즈에 비해서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태리의 롬바디지방이 원산지 이며 대략 6~12kg정도의 드럼형태로 제조되어 진다. 소젖으로 만들어지고 숙성이 된 제품의 표면에는 적색에서 오랜지색에 가까운 rind(껍질)로 덮히게 되며 안쪽은 푸른곰팡이에 의해 부스러지기 쉬운 회색과 푸른색이 섞인 부분을 갖게 된다.
이 푸른 곰팡이는 치즈에 매우 자극적이고 spicy한 맛을 내도록 만들어주며 부드러움과 풍부한 맛을 한층 더해준다. 곰팡이를 접종시키는 방법은 제조후 대략 4주 정도 지난 다음에 두꺼운 바늘로 구멍을 내어서 곰팡이를 넣는다.
곰팡이를 접종시킨 후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숙성이 되어지는데, 치즈에게 이상적으로 최적의 조건을 준다는 Valsassina와 Lodi의 동굴에서 숙성되는 방법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다
대략 3~6개월 정도의 숙성기간을 가지게 되며 48% 정도의 지방을 함유하게 된다. 보통 호일과 같은 것으로 싸서 보관하는 것이 좋은데 수분의 증발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 모짜렐라(피자치즈) 치즈[이태리]
사진은 모짜렐라 치즈로서 흔히들 피자치즈라고 불리운다. 이태리에서 만들어진 치즈로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먹고 있는 치즈이다.
다른 치즈와 달리 늘어나는 성격이 굉장히 강한데 이것은 제조 과정 중에 스트레칭이라는 것을 함으로서 성질을 가지게 된다.
수분의 함유량이 높아서 매우 연하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얼렸다가 녹였을 때에 맛과 조직감이 나빠지기 때문에 수입산보다 국내에서 만드는 것들이 훨씬 맛이 좋다. 과거에 치즈를 생산하던 업체들도 현재는 가공치즈와 모짜렐라 치즈만은 국내에서 제조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만들어서 먹어보았을 때에도 시중에 판매하는 모짜렐라치즈보다 맛이 좋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숙성치즈라서 흔히들 싫어 하는 자연치즈의 냄새가 없기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도 즐겨 먹는 치즈이다.

by ondal11958 | 2009/01/29 13:18 | 먹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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